야구(野球) 또는 베이스볼(영어: baseball)은 두 팀이 야구공과 야구 방망이, 야구 글러브를 사용해 승패를 겨루는 구기 종목이다. 야구 경기의 최종적인 목표는 투수가 던지는 공을 타자가 방망이로 타격해서, 내야의 각 꼭짓점에 놓여 있는 루(壘, Base)를 모두 밟은 뒤 마지막으로 홈, 즉 본루(本壘, Home Plate)를 밟아서 득점하는 것이다. 공격과 수비가 완전히 분리된 스포츠다.[2][3]를 쳤을 경우 갈 수 있는 루에 멈추거나 홈으로 들어와 득점할 수 있다. 공격 팀이 아웃 세 번을 기록할 경우 수비 팀은 공격 팀으로, 공격(타자) 팀은 수비 팀으로 교대된다. 이때 양 팀이 공격과 수비를 한 번씩 끝내는 것을 이닝(Inning, 회)이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한 경기는 9개의 이닝 동안 진행된다. 이닝은 초(Top)와 말(Bottom)로 구성되며, 중립 구장이 아닌 한 일반적으로 홈 팀이 말에 공격하는, 즉 홈 팀이 후공을 한다. 9이닝이 끝날 때까지 더 많은 득점을 한 팀이 이기게 되며, 만일 9이닝까지도 승부가 안 날 경우 KBO 리그는 11회까지, 일본 프로 야구에선 12회까지 연장 승부를 하며 12회까지도 승부가 안 나면 무승부로 처리된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경우는 무승부 없이 승부가 날 때까지 하는 끝장승부다.
프로·세미프로·아마추어·청소년 야구는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카리브 해,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서 열린다. 북아메리카의 미국, 캐나다와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니카라과, 파나마, 남아메리카의 베네수엘라, 카리브 해의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 공화국, 그리고 동아시아의 일본과 한국, 대만 등지에서 인기가 많다. 대신 야구의 인기는 국지적이라 이외의 대륙에선 인기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야구의 근대적인 틀은 1845년 미국의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창시한 니커보커스 규칙과 1857년 야구 기자이자 역사가였던 헨리 채드윅과 닥 애덤스에 의해 만들고 발전되어 1860년 그 규정집이 완성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야구의 원형이 북미 대륙에 건너 온 영국,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가지고 들어온 크리켓이나 라운더스와 같이 공과 방망이를 사용하는 구기 경기에서 시작되었다는 데 의견을 함께한다.
KBO는 Korea Baseball Organization의 약자로 한국 프로야구를 뜻하며, 1984년을 시작으로 하였다.
명칭의 유래
주만 가나에
야구의 명칭의 유래는 1871년 미국에서 일본으로 방문하여 일본 제일고등중학교[4]의 외국인 교사로 활동하는 호레이스 윌슨이 'baseball'이라는 운동 종목을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1894년 제일고등중학교에서 재학 중이던 주만 가나에 관료가 'baseball'을 일본어 '야구'(일본어: 野球, やきゅう 야큐[*])로 번역하였고 이 말이 한반도로 들어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야구의 근원은 고위 관료들이 좋아한 귀족 스포츠라고 볼 수 있다. 주만 가나에 선생은 "야구는 작은 정치이며, 야구는 과학이다."라고 했다. 일반 국민들은 관료들이 야구를 즐겨했기 때문에 야구를 "품위있는 운동", "우아한 운동"이라고 칭했다. 이에 앞서 4년 전인 1890년 일본의 문학가 마사오카 시키가 '배터(batter)', '러너(runner)', '베이스 온 볼스(base on balls)', '스트레이트(straight)', '플라이 볼(fly ball)', '쇼트스톱(shortstop)' 등의 미국식 야구 용어를 '타자', '주자', '사구 (四球, 대한민국에선 사구 대신 볼넷으로 사용)', '직구'(대한민국에서는 포심 패스트볼, 속구, 컷 패스트볼로 또 다르게 부름), '플라이'(대한민국에서는 뜬공으로도 부름), '단차'(短遮, 이후에는 주만 가나에의 교육에 따라 유격수로 번역함)로 번역하였다.[5] 때때로 야구를 비슷한 경기인 소프트볼(softball)에 대비하여 하드볼(hardball)로 부르기도 한다.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야구의 역사입니다.
야구의 기원
야구의 기원은 확실하게 짚어내기가 힘들다. 1344년에 출간된 프랑스의 한 책에 성직자들이 야구와 흡사한 라 술(La soule)이라는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담은 삽화가 실려있다.[6] 원래 야구는 미국의 애브너 더블데이라는 군인 출신의 인물이 1839년에 쿠퍼스타운에서 창안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직접 야구를 창안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으며, 광산 기술자 출신의 애브너 그레이브스의 증언이 있었으나 별로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에 야구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7]
방망이와 공을 이용한 경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리디아인, 페르시아인, 인도인, 이집트인, 그리스인, 로마인 등에 의해 의식이나 오락으로 행해졌다. 이런 경기들은 정해진 규칙없이 여러 지역에서 행해졌다. 이런 여러 가지 배트와 공을 이용하는 경기를 통해서 야구는 두드러진 발전을 할 수 있었다. 이런 발전을 통해서 1774년에 독일에서 프리드리히 구츠무츠가 존 뉴베리에서 출간한 《작고 귀여운 포켓북》(A Little Pretty Pocket-book)이라는 시집에서는 최초로 'Base-ball'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도 했다.[8]
방망이와 공을 이용해 하는 경기는 영국에서 여러 가지 종류로 발전하는데, 영국 동남부에서는 크리켓으로, 남서부에서는 원홀 캣(또는 원 오캣)의 이름으로 발전했으며, 야구와 흡사한 경기인 라운더스도 있었다. 이런 종류의 경기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겨와 두가지 형태로 진화했는데, 뉴욕 주변에서 행해진 타운볼은 각각 9명의 선수로 이루어진 두 팀이 하는 경기로 정비되었다.
알렉산더 카트라이트
루셔스 애덤스등은 야구의 기본적인 규칙을 확립했다. 특히 1845년에는, 미국 뉴욕의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니커보커 규칙을 만들었으며, 이 규칙은 오늘날 현대 야구의 규칙으로 진화하게 된다.[9] 그는 또한 라운더스에서 사용되었던 소프트한 공을 더 작지만 하드한 공으로 교체했다.[10] 1846년에 뉴욕 니커보커스가 창단되었다. 1953년 6월 3일, 미국 의회는 공식적으로 카트라이트가 근대 야구의 발명가임을 인정했다.
카트라이트가 소속된 구단인 뉴욕 니커보커스 팀이 1845년에 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역사상 공식적인 첫 경기로 현재 알려지고 있는 것은 1846년 6월 19일 뉴저지주의 '호보켄'에서,[11] '뉴욕 나인'[12] 이 '니커보커스' 팀을 4이닝 동안 23 대 1로 이긴 경기이다.[13]
미국에서의 발전
1860년대 이미 미국에서는 야구가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으며 선수들은 연봉을 받고 생활하는 프로 선수였으나 아마추어 선수처럼 생활해야 했다. 아마추어 시대는 1871년 3월 17일, 전미프로야구선수협회가 창설됨으로써 그 막을 내렸다. 1869년, 최초의 프로 야구 팀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Cincinnati Red Stockings)가 창단되었으며 1875년에는 내셔널 리그(연봉 상한제 있음)가 창설되었다. 1882년에는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American Association)이 창설되었고 1901년에는 이를 전신으로 하는 아메리칸 리그(연봉이 무제한임)가 창설되어 양대 리그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03년에는 양 리그의 우승 팀간의 승자를 겨루는 월드 시리즈(여기에서 월드(World)는 "월드신문사"의 이름으로써 신문사에서 스폰서를 해주기 때문에 월드시리즈라는 이름이 쓰인다고 한다)가 처음으로 치러졌으며, 1933년에는 올스타전이 처음으로 치러졌다.[14]
이후 많은 제도의 발전이 있었다. 브랜치 리키는 1920년에 대규모의 팜 시스템(Farm System)을 도입했다.[15] 1975년에는 커드 플러드 등 여러 선수들의 희생으로 자유 계약 제도가 도입되었다. 1980년에는 선수협 위원들의 노력으로 연봉 상한선이 폐지되는 등 선수들의 권익이 향상되었다.[16]
재키 로빈슨
메이저 리그 야구에서는 1947년 이전까지 흑인이 선수로 활동하지 못했다. 그 대신 흑인들은 1920년에 설립된 니그로 리그 베이스볼에서 선수로 뛰었고, 1924년에는 최초의 니그로 월드 시리즈가 치러졌다. 메이저 리그 야구에서 흑인이 최초로 선수로 뛴 것은 1947년으로, 재키 로빈슨은 브루클린 다저스에 입단해 10년 동안 팀에 몸담았으며, 1962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흑인 선수가 되었다.[17]
투수는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경기에서 타석에 섰다. 1970년대 초반, 지명타자(designated hitter, DH) 규칙이 고안되었으며,[18]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1973년부터 이 규칙이 적용되었다. 지명타자 규칙에 따르면 투수가 타석에 서지 않게 되며 지명타자는 타석에만 서면서 수비는 하지 않는다. 내셔널 리그에는 지명타자 제도가 적용되지 않았고, 지금도 투수가 타석에 선다.
메이저 리그 야구는 1980년대 초반까지 불법이었던 약물 복용이 흔했고, 이 시기가 되어서야 알려졌다. 또한 여러 선수들이 약물로 인해 사망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선수들이 근육강화제를 사용했으며, 이 때문에 2005년 3월 17일, 미국 의회는 스테로이드 사용에 관한 청문회가 열렸다. 이 때문에 메이저 리그 야구는 2006년부터 약물 복용이 처음 발각되었을 때에는 50경기, 두 번째에는 100경기, 세 번째로 발각이 되면 영구 제명이 된다는 '삼진 아웃' 제도를 적용하기 시작했다.[19]
메이저 리그 야구는 점점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었는데, 팀이 미국 동부에서 우주로 많이 옮겨갔으며, 캐나다에서도 1969년 몬트리올 엑스포스(현 워싱턴 내셔널스)가, 1977년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리그에 참가했다.[20] 현재는 내셔널 리그 15팀, 아메리칸 리그 15팀으로 팀 수 (목표는 모든 리그 16팀씩 32팀)가 유지가 되고 있으며, 경기 수는 한 시즌 당 162경기로 치러진다.